소슬바람에 나뭇잎이 우수수 소리없이 떨어지니
산골짜기에도 쌓이고 시냇물 위에도 떨어지누나
새처럼 아래위를 훨훨 날다가는
바람결 따라 저마다 동과 서로 흩어지네
본디 잎새야 푸르르건만 누렇게 병들어
푸른빛 시샘하는 서리를 맞고 가을비에 더욱 애처롭구나
두견새야 너는 어찌 그다지도 정이 박약하여
지는 꽃만 슬퍼하고 낙엽에는 안 우느냐
가을을 맞아 소슬한 바람에 사방으로 흩어져 날려가는 낙엽의 쓸쓸함을
읊은 시라고 하네요.
천리를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떠돌다 보니
남은 돈 엽전 일곱 푼이 아직도 많은 것이니
그래도 너만은 주머니 속 깊이 간직하려 했건만
황혼에 술집 앞을 이르니 어이 할꺼나
저녁노을 붉게 물든 길을 가다가 주막을 보고 술 생각이 간절하여 읊은 김삿갓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무덤앞에 술 한잔 따르지 못하고 돌아온게 못내 아쉽습니다.
난고 김삿갓의 생애
난고 김삿갓 선생은 안동김씨의 시조인 고려 개국공신 선평의 후예로 순조 7년(1807) 3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에서 출생하였고 본명은 병연, 호는 난고이다.
순조11년(1811)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을 때 조부 김익순이 선천부사로 있으면서 홍경래에게 항복, 역적
으로 몰려 폐족처분을 받아 가족이 영월로 옮겨와 은둔생활을 하였다.
이러한 생활속에서도 모친은 자식에게 조부의 사연을 감추고 글을 가르쳤으며, 20세 되던 해 영월 동헌
에서 백일장에 응시하여 조부를 비판하는 글로 장원이 되었다.
그 후에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자책과 통한을 이기지 못하여 22세에 집을 나서 방랑생활을 하면서 서민
들의 애환을 시로 읊어 서민문학의 큰 틀을 마련하였다.
1863년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에서 작고하여 그 곳에 묘를 썼으며, 삼년 후 둘째 아들 익균이 지금의 묘로
옮겨 모셨다.
▼詩仙 김삿갓 묘역 앞에 조성된 작은 공원..유적비와 시비, 조각상들이 조성되어 있다.
가까운 곳에 김삿갓 문학관도 자리하고 있다.
▼젊은시절 시인 김삿갓이 살았던 주거지로 가는 길..김삿갓 묘역으로 부터 1.8km 떨어진 마대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데 지프차는 중간쯤까지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의 비포장 길이 닦여져 있다.
▼마대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김삿갓 주거지
▼김삿갓 주거지..1982년 김삿갓의 주거지를 발견할 당시 이 곳에서 살았던 엄운섭(당시64세)의 증언에
의하면 1972년경 주거지 본채의 대들보가 썩어 내려 앉아서 철거하고 바깥채에서 살고 있다고 하였다.
화전촌의 집은 모두가 통나무로 짓는 것이 관례인데, 이집 본채 자리 철거목재는 기둥, 천장보 도리등이
도끼로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가 양반댁의 안목 있는 주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의 주거지 건물은 강원의 얼 선양사업의 일환으로 2002년 9월에 복원한 것이다.
▼영월 태화산에서 바라 본 마대산 전경..앞쪽으로는 남한강이 흐르는 좌측 골짜기에 시인 김삿갓의
유적지가 자리하고 있다.
▼김삿갓 묘역..1863년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에서 작고하여 그 곳에 묘를 썼으나, 삼년 후 둘째 아들 익균이
지금의 묘로 옮겨 모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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