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나들이(2)_선비촌-소수서원-부석사-풍기인삼시장
○일자 : 2013. 6. 29.
○소수서원 소개
조선 중종 38년(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워 서원의 효시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이 된 이 서원
은 건립 당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으로 불렸는데, 그 후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한 후
조정에 건의하여 소수서원으로 사액되었다. 사액서원이라 함은 나라로 부터 책, 토지, 노비를 하사
받아 면세, 면역의 특권을 가진 서원을 말한다.
'소수(紹修)'라 함은 '이미 무너진 교학을 닦게 하였음'이란 뜻으로 학문 부흥에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당시 명종임금은 손수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편액 글씨를 써서 하사하였다고 한다.
소수서원 입구에는 죽계수가 흐르고 있고 노송 숲이 우거져 있어 운치를 돋우고 있다.
죽계천은 멀리 초암계곡에서 발원한 계곡으로 주위의 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울창한
노송숲이 어우러져 절경을 빚어내고 있다.
소수서원의 경렴정에서 이 경치를 바라보면 경(敬)과 백운동(白雲洞)이라는 글씨가 음각된 바위가
있다. "경(敬)"자는 유교의 근본정신인 "경천애인(敬天愛人)"의 머리글자로 공경의 의미가 담겨
있는 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주세붕이 숙수사를 헐어내고 서원을 건립하던 당시, 밤만되면 혼령들이 울게 되므로 연유를 물어
본즉, 세조 3년(1457) 단종복위운동 실패로 참절당한 제 의사들의 시신을 죽계천 백운담에 수장
시킨 영혼들의 울음소리였다. 이러한 까닭에 유생들이 밤 출입을 꺼리자, 주세붕선생이 영혼을
달래기 위하여 날을 택해 경(敬)자에 붉은칠을 하여 위혼제(尉魂祭)를 드리니 그때부터 울음이
그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흘린 의사들의 피가 죽계천을 따라 이곳에서 약 7km 떨어진 동네
앞까지 가서 멎었다고 해서 지금도 동네 이름을 "피끝마을"이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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