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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시가(十二時歌) 조주종심

법명(法明) 2008. 8. 8. 17:23

십이시가(十二時歌) 조주종심  

 

 

하나.(닭이 우는때)



문득 잠에서 깨어 쓸쓸한 내 모습 보네
속옷과 웃옷은 한벌 없고
다 헤어진 겉옷만 남아 있네
허리 없는 잠방이 발 들일 곳조차 없는 바지 한 벌
머리에는 비듬이 서너 말은 되겠네
도를 깨쳐 중생제도 해보려던 내가 이렇게 멍청하게 될 줄 뉘 알았으랴.

 



둘.(새벽녘)



벽촌의 부서진 암자 말로 형언키 어려워
아침 죽 속에는 쌀알이라곤 전혀 없나니
하염없이 창 틈 사이 먼지만 바라볼 뿐
들리느니 참새 지저귀는 소리뿐 인적은 없어
홀로 앉아 잎 지는 소리 듣네
누가 말했는가 수행자는 애증을 끊는다고
생각할수록 눈물이 손수건을 적시네.

 



셋.(해뜨는 시간)



청정함이 도리어 번뇌가 되나니
유한한 공덕은 티끌에 묻히고
무한한 마음밭은 빗질 한 번 한적 없네
눈썹 찌푸릴 일만 많고 웃을 일 적은데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은 동쪽마을 황씨 노인
공양이라곤 단 한 번도 가져온 일 없는데
노새를 놓아 우리 절 앞의 풀 함부로 뜯어 먹이네.

 



넷.(아침 먹을 때)



이웃들의 밥 짓는 연기만 바라볼 뿐
만두와 떡은 작년에 이별했나니
지금은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네
마음을 가다듬을 수 없어 탄식만 하고 있나니
백여 호나 되는 마을에 착한 사람 하나 없네
찾아오는 이는 오직 차만 달라 하고
차를 내주지 않으면 화를 내며 돌아가네.

 



다섯.(해가 높아지는 시간)



머리깍고 이 지경이 될 줄 뉘 알았으랴
어쩌다가 시골 중이 되어
굴욕과 굶주림에 죽을 지경이네
키다리 장씨 노인 얼굴 검은 이씨 영감
나를 존경하는 마음은 전혀 없고
아까도 왔다 가더니 또다시 찾아와서는
차를 꿔 달라 종이를 꿔 달라 귀찮게 구네.

 



여섯.(해가 머리위에 온시간)



차를 마시다 밥을 먹다 도무지 순서가 없어
남쪽집에 갔다가 북쪽집에 들렀더니
쓰디쓴 소금덩이에 쉬어 버린 보리밥
수수밥에 상추를 내주고 하는 말이
식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니
도심은 더욱 견고해야 한다나...

 



일곱.(해가 기우는 때)



이제는 굳이 밥 빌러 다닐 필요가 없네
배부르면 지난 날 굶주린 일 잊는다더니
오늘 내 신세가 그리되었네
참선도 하지 않고 경전도 안 읽나니
헤어진 멍석 깔고 누워 한잠을 자네
천상의 그 어디라 해도
등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이런 햇살 없으리.

 



여덟.(저녁때)



그래도 향을 사르며 예배하는 사람 있네
다섯 할멈 가운데 세 명은 혹이 달리고
두 사람의 얼굴은 온통 주름투성이
참깨와 차를 공양 올리다니 진귀한 일이네
금강역사여 팔뚝에 너무 힘을 주지 말게나
내년에 누에농사 보리농사 잘되면
나도 나한전에 공양 좀 올리려 하네.

 



아홉.(해지는 시간)



이 황량함 밖엔 무엇이 또 남아 있는가
눈 푸른 납자는 눈에 안 띄고
절을 거쳐 가는 사미승은 언제나 있네
벼락 치는 활구는 단 한 마디 없이
그저 엉터리로 부처의 뒤를 이어 가네
한 개의 든든한 이 쥐똥나무 주장자여
산 오를 땐 지팡이요 때론 개도 후려쫓네.

 



열.(황혼의 때)



캄캄한 방에 홀로 앉아 있나니
가물거리는 호롱불은 켜 본 적 없어
눈앞은 온통 어둠 뿐이네
종소리도 듣지 못한 채 하루 해가 저무나니
들리는 것은 늙은 쥐의 찍찍거리는 소리뿐
아아 내 무슨 심정으로 저 바라밀을 생각하겠는가.

 



열하나.(잠들 시간)



휘영청 저 달은 밝기만 한데
제일로 걱정되는 것은 잠자리에 누울 때라
옷 한벌 없으니 무엇을 덮고 자겠는가
절 살림 사는 원주와 신도들은
입으론 곧잘 착한 말 하나 그 마음씨 의심스럽네
내 호주머니 이렇게 텅 비어 있는데도
물어 보면 그저 무조건 모른다고만 하네.

 



열둘.(한밤중)



생각은 잠시도 멈추지 않아
출가한 수행자 가운데
나처럼 사는사람 얼마나 되리
맨흙 바닥에 다 헤어진 깔자리
느릅나무 목침에 이불은 전혀 없네
불전에 피울 향조차 없으니
재 속의 쇠똥 타는 냄새나 맡을 뿐이네

 

 




선승의 하루를 읊은 시 입니다..

언뜻 보면 청승맞아 신세 타령같습니다.

그러나
선의 경지마저 벗어나 버린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의 세계를 읊고 있다고 합니다.
조주선사 께서는 120세를 살다간 선승으로서

40년은 참선

40년은 운수행각

그리고 나머지 40년은 제자 지도로 일생을 보낸 당대 최고의 선승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감히

무르녹을 대로 무르녹아 차라리 바보스럽기까지 한

이천진 무구한 120세의 노인을 경외 하게 합니다.




석지현스님의.....선시감상사전 중에서 인용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