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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임실의 '멋진 길'

법명(法明) 2008. 7. 23. 10:57

전북 순창·임실의 '멋진 길'<세계일보 2006/11/10/금/W6면>

저~기 저 길이 내게 손짓을 하네
 
 ◇안개에 휩싸인 임실 옥정호 순환도로.

전북 내륙 지방이 여행지로서 최고의 성가를 누릴 때는 아마도 늦가을일게다.

전북에는 지리산·내장산·마이산 등 단풍 명소가 몰려 있고, 올해는 단풍의 남진 속도가 늦어 남부 지방에서는 이달 하순까지도 늦단풍을 즐길 수 있다. 만추에 막바지 단풍을 좇아 전북의 명산을 찾는다면 오가는 길에 인근 순창과 임실도 둘러보자. 순창과 임실에는 놓치고 가면 후회할 만한 멋진 길들이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다. 차를 타고 달려도 좋고 천천히 걸어도 좋다. 이 길에 들어서면 눈이 즐거워질 뿐 아니라 마음까지 청량해진다.

 

# 강천사 부근 메타세쿼이아 길

순창 읍내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가다 강천사로 연결되는 792번 지방도로로 접어들면 약 3㎞에 걸쳐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이 펼쳐진다.

 

인접한 전남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의 명성에 묻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낭만적인 드라이브 코스를 찾는다면 이만한 길도 드물다. 담양 것과 비슷한 시기인 1970년대 중반에 심어진 이곳 가로수는 높이가 20m를 넘고 요즘도 초록 터널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왕복 2차선 도로는 한낮에도 울창한 가로수 그늘에 가려 어둑어둑하다. 가로수길 안에서는 물론이고 밖에 나와 바라보는 풍경 역시 장관이다. 9㎞에 달하는 24번 국도변 담양 가로수 길이 영화 촬영지로 자주 이용되며 전국적인 명소가 된 것과 달리, 순창 길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지방도로인 탓에 오가는 차량도 많지 않고, 한가로이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눈에 많이 띈다. 차를 세워 놓고 느릿느릿 걸으며 초록의 생기를 가슴 깊숙이 흡입하고 싶은 충동을 좀처럼 제어하기 어려워진다. 11월 하순부터는 단풍이 들어 12월 중순까지 길을 붉게 물들인다.

 

792번 지방도로를 벗어나 다시 24번 국도를 타고 가면 곧바로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로 연결된다. 792번 지방도로와 24번 국도의 연결점 바로 앞에는 ‘순창 전통 고추장 민속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민속마을에서는 54농가에서 전통 기법으로 담근 각종 장과 장아찌를 판매한다.

 

◇순창 강천산 부근 메타세쿼이아 길(왼쪽), 강천산 병풍폭포.

 

# 왕복 5㎞의 강천산 맨발 산책로

강천산은 ‘호남의 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단풍이 근사한 곳이지만, 왕복 5㎞에 달하는 산책로는 그 자체만으로도 여행의 목적이 되기에 충분하다. 산 입구인 병풍폭포에서 가파른 등산로가 시작되는 구장군폭포 앞까지 이어지는 길은 경사가 없는 평지이며 황토 위에 고운 모래가 깔려 있다. 쌀쌀한 요즘에도 만추의 햇살이 따사로운 한낮이면 신발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오가는 등산객이 적지 않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한쪽에는 청정계곡이 펼쳐지고 또 한쪽에는 병풍폭포(높이 40m), 강천사, 현수교(높이 50m), 구장군폭포(120m) 등 강천산 명물들이 이어져 여행객은 수시로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다. 유난히 가뭄이 심했던 올가을에도 강천산 계곡과 폭포는 수량이 풍부해 시원한 절경을 뽐내고 있다. 노인들과 아이들도 이곳 풍광에 취해선지 5㎞ 길을 가볍게 완주한다. ‘발 지압 효과가 좋은 웰빙 산책로’라는 표지판 문구에 절로 공감하게 된다. 이 산책로 주변에는 휴양림과 나무의자, 운동기구 등 편의시설도 잘 꾸며져 있다.

 

◇강천산 맨발 산행길(왼쪽), 강천산의 현수교.

 

# 임실 옥정호 순환도로

옥정호는 전북 임실군 운암면과 강진면, 정읍시 산내면 일대에 걸쳐 있는 드넓은 호수로, 섬진강 최상류에 해당한다. 1961년 김제평야에 농업용수를 대기 위해 섬진강댐 공사가 시작되며 만들어졌다.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옥정호를 끼고 돌아가며 운암면 운암리와 마암리를 연결하는 749번 지방도로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다. 17.6㎞에 달하는 이 도로는 건교부가 ‘한국의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선정한 곳이기도 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따라 달리면 드넓은 호수의 장관에 가슴이 탁 트인다. 가을 햇빛이 반짝이는 물결, 산자락이 투영된 호수면, 안개에 휘감긴 봉우리 등은 말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다. 이 호반 도로는 봄에는 벚꽃과 장미꽃, 초가을에는 코스모스로 수놓인다. 예년과 달리 올해 주변 단풍은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이 길을 달리는 것만으로도 여행객의 흥분은 한껏 고조된다.

 

순환도로 중간쯤에 위치한 국사봉(475m) 정상에 오르면 호수 한가운데 위치한 붕어섬 등 옥정호의 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섬의 원래 이름은 ‘외안날’이지만, 붕어 모양과 흡사하다고 해서 흔히 붕어섬으로 불린다. 아침 안개가 걷히며 햇빛이 비치기 시작하면 이 섬은 황금색으로 변한다. 달랑 2가구가 농사짓고 있는 붕어섬에 가보려면 순환도로에서 샛길을 타고 내려와 배를 이용해야 한다.

 

늦가을 새벽 물안개가 환상적인 옥정호는 사진 촬영의 명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물안개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날은 의외로 많지 않다. 멋진 작품을 만들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왔다가 허탕쳐 일주일씩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는 출사객도 적지 않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