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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내음 가득한 남도의 길을 따라(Ⅱ)

법명(法明) 2008. 7. 22. 18:16

 

영취산 진달래와 오동도 동백을 두 눈에 가득가득 넣어두고 향일암으로 향했다.

몇 해전 와봤던 곳이지만 그땐 시간에 쫓겨 스쳐지나 갔던 곳이어서 인지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향일암은 남해 금산 보리암, 양양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4대 기도도량이자 일출의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곳이다.

 

▲향일암 오르는 길의 해탈문, 이곳을 지나려면 다이어트 좀 해야겠다.

 

 

향일암으로 오르는 길엔 금오산(金鰲山)이라는 이 산의 이름에서처럼 작은 돌멩이

하나까지도 거북 등처럼 정교하게 새겨진 문양이 신비롭고 다이어트 잘해 날씬한

몸매만 통과시켜주는 바위틈새를 지나야만 다다를 수 있다.

 

▲향일암 관음전 옆의 해수관음상, 이곳에서 보는 일출이 장관이라는데 아쉽다.

 

 

절집 마당에서 바라 본 석양의 노을 빛에 물든 짙푸른 남해바다가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

향일암 뒤에는 설악산 흔들바위보다 조금 작지만 아이들이 흔들어도 흔들리는 바위

는데 흡사 경전을 펼친 모양이라 이를 한번 흔들면 불경을 한번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이

다고 한다. 보고서야 아니 흔들어 볼 수가 있으랴. 그 위로 5분쯤 오르니 시야가 확 트이는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촛대바위, 기둥바위 등 기이한 형상의 바위들이 푸른 물결과 함께

어우러진 멋진 경관은 가히 선경이다.

향일암을 뒤로하고 어둠이 깔리는 비탈길을 내려와 남해로 향했다.

 

 

▲금산 정상에서 본 남해, 보리암의 모습과 멀리 상주해수욕장이 보인다.

 

 

4월9일 둘째 날,

보리암에서의 일출을 보기 위해 전날의 피곤함도 잊은 채 서둘러 금산(錦山) 에 올랐다.

그러나 일출시간이 지났는데도 해는 떠오르지 않고 붉게 물들어가는 구름만이 날이 밝아옴을

알리고 산 아래로는 아름다운 모습의 상주해수욕장이 내려다 보인다.

그래 저곳에서의 만남이었는데, 마음속 깊이 묻어만 두었던 철없던 시절의 아름다운 인연,

그 인연의 매듭을 풀어가면서 상념에 젖어 있는 순간 붉은 태양은 솟아오르고 그 속에서 아직

도 누군가의 맑은 미소가 흐른다.

지나간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 여기에 서있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구름사이로 솟아오르는 남해 금산의 일출

 

 

한참을 옛추억에 사로잡혔다 법당으로 들어가 나와 인연을 맺게 해준 모든 이들의 행복을 빌며

기도를 올리고 나서야 산을 내려왔다. 이제 여기서부터는 섬들을 가로질러 바다위로 갈 참이다.

 

 

올망졸망한 섬들을 사이에 두고 남해와 삼천포항을 잇는 창선대교, 늑도대교, 초양대교를 지나

멋진 모습의 연륙교인 삼천포대교를 건너는 길은 간간히 내비치는 봄 햇살을 받아 남해의 물결이

반짝인다.

 

‘잔잔히 반짝이는 물결의 비늘을 헤치며

우울한 너의 영혼 부서지도록 껴안으러

바람부는 날에는 너에게로 가고싶다

심진스님의 노랫말처럼 무거웠던 영혼을 부셔버리고 솜털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날아가고 싶다.

갑자기 스님이 뵙고 싶어진다.

 

 

▲문수암에서 본 남해바다. 그러나 구름과 황사로 인해 분간이 안된다.

 

 

근처에 오면 꼭 들렀다 가보고 싶었던 곳, 고성에 있는 문수암으로 향했다.

문수암은 1,300여년 전 의상조사가 남해 금산으로 기도하러 가던 길에 꿈속에 나타난 관세음

보살의 말대로 두 걸인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따라 무이산 중턱에 올라 이곳을 둘러보고

여기에 문수암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기암절벽이 암자 뒷편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당시 문수보살이 사라졌다는 그 석벽사이

에는 지금도 천연의 문수상이 보인다. 산정에 오르면 사량도를 비롯해 남해안 한려해상국립공

원의 크고 작은 많은 섬들이 떠있어 그 절경 또한 장관이다. 그러나 짙은 황사와 구름으로 인해

그 절경을 볼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문수암에서 차로 5분거리인 보현사, 법당 3층에 약사여래대불이 조성되어 있다.

 

 

내려가는 길에 문수암에서 지척인 보현사를 찾았다. 화려하게 지어진 법당 뒷쪽으로 약사여래

대불이 장엄하게 조성되어 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법당에 참배하고 나와 돌아오

려고 하니 어딘지 모르게 허전함이 남는다. 봄이되면 꼭 찾아가 보리라던 고담사를 빼놓고 다녀서

일까? 심진스님께 전화를 하니 오늘은 공연스케쥴도 없고 마침 고담사에 계신단다.

서둘러 지리산으로 가는 길은 신바람이 난다.

 

 

▲봄옷으로 갈아 입고 있는 고담사의 모습, 그아래로 해우소 불사가 한창이다.

 

 

▲고담사 다실앞에도 스님이 텃밭을 만들어 놓고 봄이 무르익기만을 기다린다.

 

 

고담사의 다실에서 스님이 내어 주시는 차 한잔에 남아있던 허전함이 찻잔에 녹아 내리고 만다.

이틀에 걸친 남도의 봄내음에 흠뻑 취해서 겨우내 짓눌렀던 무거웠던 마음을 솜털처럼 가볍게,

봄 햇살만큼이나 따사롭게 행복으로 가득가득 채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다음주는 어디로 갈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