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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관광] 무열왕릉,대릉원(천마총),첨성대,불국사,석굴암

법명(法明) 2014. 1. 6. 12:01

2014년 신년초 경주관광시 촬영한 사진입니다.

 

 

신라 무열왕릉 

 

▼경주시 서악동 842번지에 위치한 신라 무열왕릉 입구입니다. 

 

▼신라 제29대 태종 무열왕(김춘추, 재위년도: 654~661)을 안치한 능입니다. 이 능의 뒷쪽에 있는 

   선도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해 있는데, 김춘추는 신라의 첫 진골 출신 왕

   으로 삼국통일을 이룩하려고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병합하고 통일 대업의 기반을 닦았으나

   통일을 완수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인물입니다.

   능은 밑둘레 114m, 높이 8.7m로 비교적 큰 편으로 동쪽에서 비석을 세웠던 돌 거북과 머릿돌이

   나왔는데, 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이 쓴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이 곳이 무열왕의 능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열왕릉 옆에 있는 비석을 세웠던 거북 모양의 받침돌과 용을 새긴 머릿돌입니다.

   비석은 사라지고 없지만 머릿돌에는 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이 쓴 '태종무열대왕지비

   (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글씨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어 이 능이 무열왕릉임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무열왕릉 뒷쪽에 위치하고 있는 서악리 고분군입니다. 이 곳에 있는 고분들이 누구의 무덤인지

   밝혀지지 않았으나, 무열왕릉 뒤편에 있는 것으로 보아 무열왕과 가까운 왕이나 왕족의 무덤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대릉원(천마총,황남대총) 

 

▼경주시내 황남동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 무덤들로 신라초기의 고분군이 있는 대릉원입니다.

   대릉원 안에는 30기의 무덤이 있는데, 미추왕릉을 비롯하여 천마총과 황남대총 등이 있습니다.

 

 

▼대릉원 안에 있는 무덤들로 일련번호만 붙여져 있는 고분들입니다. 

 

 

 

▼대릉원 안의 대표적 무덤인 천마총입니다. 1973년도에 발굴조사된 천마총은 지름 47m,

   높이 12.7m로 되어 있으며, 금관을 비롯한 많은 유물이 나왔는데, 당시 천마도가 그려진

   말다래가 출토되었기 때문에 '천마총' 이라 이름붙여지게 되었으며 유일하게 내부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내부에 있는 유물들은 모두 복제품이고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천마총 내부 발굴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상태입니다. 구조는 평지 위에 나무로 된 목관과

   부장품 상자를 놓고, 그 바깥에 나무로 짠 덧널(목곽)을 설치하여 돌덩이를 쌓고 흙으로 덮은

   형태로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돌무지 덧널무덤(積石木槨墳)입니다. 

 

▼천마총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된 출토 유물 말다래입니다. 천마도가 그려진 말안장 드리개로

   진품 원형 그대로 복제해 놓은 것으로 재질은 자작나무 껍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아래는 출토 유물중 일부로 금관과 귀걸이 등입니다. 

 

 

▼천마총 옆에 있는 황남대총입니다.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발굴조사된 황남대총은 남북길이 120m,

   동서길이 80m, 높이 23m의 거대한 쌍무덤으로 남쪽 무덤에서는 금동관과 남자의 뼈 일부 및 많은

   유물이 나왔고, 북쪽 무덤에서는 금관과 '부인대(夫人帶)'라는 글씨가 있는 과대 등 많은 유물이

   나왔는데, 남쪽 무덤의 주인은 남자, 북쪽 무덤의 주인은 여자로 부부의 무덤을 붙여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첨성대 

 

▼신라 선덕여왕 때 만들어진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로 알려진 첨성대(국보 제31호)

   입니다. 화강석을 가공하여 조성한 기단 위에 27단의 석단을 원통형으로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장대석을 우물정자(井) 형으로 축조하여 정상부에서 천문을 살피도록 시설되어 있습니다.

   밑면의 지름 5.17m, 높이 9.4m, 지대석 한변의 길이 5.35m 로 정남쪽 석단에는 아래로 부터

   13단과 15단 사이에 사각형 출입구가 있어 이곳에 사다리를 걸쳐 내부로 들어간 후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불국사 

 

▼불국사가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리는 표지석과 불국사 입구 일주문입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아름다운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습니다. 

 

▼불국사 입구를 들어서서 극락전과 대웅전으로 오르기 전 아래쪽에 있는 연화교,칠보교 및

   청운교,백운교 앞 광장입니다. 

 

▼측면에서 바라 본 연화교,칠보교 및 청운교,백운교 입니다.

 

▼8세기 중엽에 건립되어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통일신라의 계단으로 국보 제22호인 연화교 및

   칠보교입니다. 극락전 구역으로 오르는 석조계단으로 아래쪽의 연화교는 10단이고 위쪽의   

   칠보교는 8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연화교의 층계에는 계단마다 넓은 연꽃잎이 새겨져 있는데,

   계단을 밟는 사람이 아미타 부처님의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연화교 및 칠보교와 함께 8세기 중엽에 건립된 국보 제23호인 청운교 및 백운교입니다.

   대웅전 구역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위쪽이 청운교, 아래쪽이 백운교인데, 계단을 다리라고 한 것은

   속세로부터 부처님의 세계로 건너감을 상징합니다. 청운교는 16단, 백운교는 18단이며, 청운교와

   백운교가 이어지는 부분의 아래쪽은 무지개 모양의 홍예로 되어 있어, 우리나라 홍예교와 홍예문

   의 초기 형태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범영루입니다. 불국사고금역대기에 의하면 이 자리에 있던 원래의 건물은 '우경루'로, 좌경루와

   함께 경전을 보관하였던 곳으로 보입니다. 현재의 건물은 1969~1973년 불국사 복원공사 때 다시

   세운 것으로, 범영루 건물을 받치고 있는 수미산 형태의 돌기둥은 8세기 중엽 불국사가 건립되었

   을 때 세워진 원래의 건물을 받치고 있던 기둥으로, 돌을 목조 건축 부재인 첨차 모양으로 다듬어

   차곡차곡 쌓아올린 것입니다. 

 

▼토함산에서 내려오는 옥로수를 담았던 석조인데, 보물 152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불국사 대웅전입니다. 임진왜란 중인 1593년 건물의 석조 기단을 제외하고 모두 불에 탔으나, 

   1765년 남아 있던 기단 위에 앞면, 옆면 각 5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재건되어, 통일신라

   때의 기단과 조선 18세기의 건물이 결합된 독특한 구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좌측의 부스는 내부에서 석가탑 해체 수리중인 건물입니다.  

 

 

 

▼대웅전 현판 우측에 있는 조각상으로 용이 여의주가 아닌 물고기를 물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대웅전 앞에 있는 석등과 다보탑입니다. 

 

▼대웅전 앞 우측에 있는 국보 제20호인 다보탑입니다. 8세기 중엽 신라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불국사

   를 건립했을 때 세워진 것으로 목조 건축의 여러 요소들을 조합한 독창적인 형태의 탑으로 높이가

   10.3m인데, 기단 위에 놓인 돌사자는 원래 4마리였으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없어져 현재 1마리만

   남아 있습니다.  

 

 

▼대웅전 앞 좌측에 있는 석가탑은 현재 해체 수리중에 있으며, 해체 당시에 발견된 석가모니 부처님

   진신사리는 대웅전 뒤쪽 무설전에 전시되어 공개되고 있습니다. 

   <현재 석가탑이 해체된 상태여서 아래 사진은 불국사 자료사진을 옮겨 왔습니다.>

 

 

▼대웅전 뒤쪽에 있는 무설전입니다. 현재 이곳에서는 석가탑 해체시 발견된 석가모니 부처님

   진신사리를 2014년 3월말까지 전시하고 있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극락전입니다. 이곳에는 국보 제27호인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이

   있습니다.

 

▼극락전 안에 모셔져 있는 금동 아미타여래좌상입니다. <사진은 불국사 자료사진을 가져옴>

 

▼극락전 현판 뒤쪽에 있는 복돼지 조각상입니다. 유심히 보기 전에는 지나치기 쉬운 보물입니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전입니다.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신 비로전입니다. 이곳에는 국보 제26호인 금동 비로자나불좌상이

   있습니다.

 

▼비로전 안에 모셔져 있는 금동 비로자나불좌상입니다. <사진은 불국사 자료사진을 가져옴>

 

▼비로전 좌측에 있는 보물 제61호 사리탑입니다. 탑의 높이는 2.06m로 외형은 석등과 비슷한데, 

   팔각형의 하대석에는 큼직한 연꽃 여덟 잎을 구성하고 장구 모양의 중대석에는 구름 문양을

   조각하고, 원통형의 탑신 각 면에는 불상을 모시는 감실을 얕게 조각하여 만들었습니다.

   독특한 형태의 이 탑은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1905년 일본인에 의해 도쿄 우에노공원

   으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1933년에 반환된 것으로, 일제시대 당시 모진 수난을 당한 우리 문화재

   의 아픈 역사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석굴암 

 

▼석굴암 입구에 세워진 표지석과 일주문입니다.  

 

 

▼석굴암 주법당인 수광전과 그 좌측의 석굴이 자리하고 있는 곳입니다.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재위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처음 건립하였는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

   라고 불렀지만 일제 강점기 때 석굴암으로 격을 낮춰 불렀다고 합니다.

   석굴암은 불국사 보다 앞서 건립된 것으로 보입니다.  

 

▼석굴암 석굴 내부의 본존불입니다. 이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직사각형의 전실과 원형의 주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개의 넓적한 돌로 둥근형태의 주실 천장을

   교묘하게 축조한 것으로 이 건축 기법은 세계 유래가 드문 뛰어난 기술입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대성이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하여 건립했다고 전하는 석굴암의 석굴에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천부상, 보살상, 나한상, 거사상, 사천왕상, 인왕상, 팔부신중상 등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석굴암 석굴 내부 배치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