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 & 정맥┣━━━/백두대간-북진(終)

[백두대간 8(2-1)구간] 고기리~수정봉~여원재~고남산~매요리

법명(法明) 2009. 7. 20. 14:43

[백두대간 8(2-1)구간] 고기리~수정봉~여원재~고남산~매요리

 

 

○산행일시 : 2009. 7. 19. 08:10~15:30 (소요시간: 7시간20분, 중식시간 30분 포함)

○산행구간 : 고기삼거리(08:10)-(2.4km)-노치샘(08:45)-(1.8km)-수정봉(09:30)-(1.3km)

                   -입망치(10:00)-(3.3km)-여원재(11:08~11:40)-(5.3km)-고남산(13:40)

                   -(5.1km)-매요리(15:30)

○산행거리 : 대간거리 19.2km/접속거리 0km/실거리 19.2km

○날씨 : 비

○구간특징

   -산행 들머리 : 고기삼거리

   -고기삼거리에서 운봉방향 지방도 60번 도로를 따라 약20여분 진행하다가 좌측 노치마을로 진행

   -노치마을 진입후 노치샘을 거쳐 마을 뒷편 당산소나무 군락지로 진행

   -수정봉은 이정표가 있으며, 수정봉에서 내려서다 임도 갈림길 주의(시그널 확인)

   -입망치로 떨어진 후 700봉 방향으로 진행

   -700봉에서 여원재로 내려오는 길에 임도를 만나며, 임도를 따라 내려오다 왼쪽 산길로 진입

   -여원재는 24번 국도상의 정상이며 표지판 있음

   -여원재로 내려와 좌측으로 50 여m 진행하여 우측으로 시그널 확인 후 진행

   -이곳부터 고남산 진입로까지 논밭을 가로질러 가야 하므로 주의바람

   -고남산 정상석 확인 후 헬기장을 통과하여 KT송신소를 우회하여 정문쪽으로 진행

   -정문입구 20 여m 전방에서 좌측으로 진행(시그널 확인)

   -안부를 따라 내려서면 아스팔트 도로인 통안재에 이르며 도로를 내려서다가 좌측 전신주쪽으로

     진행 (특히 주의, 시그널 확인)

   -유치재를 지나 야산 구간을 지나면 매요마을에 도착

   -매요리 마을회관 앞에서 8구간 산행을 마침.

   -식수 보충장소: 여원재 민가

      

○고도표 

  

○지형도  8구간 지형도.jpg

 

 

 

 

고리봉을 내려와 8구간이 시작되는 고기삼거리에서 부터는 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찾을 수가 없다.

지리산에서 백두까지의 백두대간한반도 물줄기를 동서로 가르는 주맥이자 가장 큰 분수령으로, 

이런 백두대간이 고리봉을 내려와 고기리에 다다르면 더 이상 능선을 타고 북진할 수가 없게 된다.


수정봉을 눈앞에 두고 좌우 즉, 노치마을에서 왼쪽으로 빠지는 요천, 섬진강 물줄기와 오른쪽의 덕산

저수지로 빠지는 낙동강 물줄기를 건널 수가 없는 것이다. 고기삼거리에서 오직 이 좌우 물줄기가

나누어지는 노치마을 길을 따라서만이 백두대간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즉 평지가 산이 된 셈이다.


김정호『대동여지도』를 보면 이 길을 따라 정확하게 산길을 이어 놓았는데 이런 분수계를 따라

같은 마을이면서도 운봉읍주천면으로 그 경계가 나뉘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곳은 평지가 산이 되는 곧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

지 않는다)을 정확하게 지키는 구간인 것이다. 이런 극적인 구간이 있는 이곳이야말로 우리 조상들

의 정확한 분수계 설정과 백두대간의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며칠째 남북으로 오르내리던 장맛비가 오늘은 남부지방에서 계속되고 있다. 우중산행을 각오했던

터라 이런 비쯤이야 문제될 것이 없어 고기삼거리에서 60번 지방도로를 따라 8구간을 이어간다. 

운봉방향으로 진행하다가 노치마을 표지석에서 좌측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선다. 노치마을 앞으로는

주천에서 시작된 지리산길이 마을앞을 지나 운봉으로 연결되어 있고, 마을 안쪽에는 유일하게 백두

대간이 지나는 마을이라는 소개와 함께 백두대간과 정맥들이 표시되어 있는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찌 백두대간이 통과하는 마을이 이곳뿐

이겠는가?

 

마을안쪽 노치샘에서 부터 대간길은 수정봉을 향해 키를 높이면서 노치마을의 당산소나무를 지난다.

마을 뒷쪽의 아름드리 육송인데도 마치 바위틈에 뿌리내린 듯 운치있게 휘어져 있다. 잘 나있는 길을

따라 오르자 수정봉 정상이다. 


옛날 수정광산이 있어 부르게 되었다는 수정봉마치 학이 날개를 펴고 날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곳으로, 전설에 의하면 수정봉노치마을에 옛날 민씨(閔氏)라는 거지가 살았는데 그는

짚신을 삼아 팔면서 살았다고 한다. 어느 추운 겨울날 민씨가 죽어 눈 덮인 산을 헤매어 시체를 매장

하려는데 신기하게도 시체의 관이 알맞게 들어갈 만큼 눈이 녹아 있는 곳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곳에 장사를 지냈는데 바로 그 자리가 용은 용인데 주인이 없다는 황룡무주(黃龍無主)의

명당이었다.


이 묘를 쓴 뒤 그 후손이 번창하였다고 하는데 그 묘에 호화롭게 석물을 세우고 보수를 한 뒤로는 자손

들이 뜻밖에도 나쁜 일을 당해서 다시 석물들을 없앴더니 화가 없어졌다고 한다. 돌이 무거워 학이

날지 못했다는 것이다.

 

수정봉을 뒤로 하고 올라온 만큼 내려서는 안부가 입망치다. 또다시 700봉을 올랐다 내려서니 백두

대간의 유서깊은 고개인 여원재다. 여원재(女院峙 470m)는 전북 남원과 경남 함양을 잇는 24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지리산 뱀사골과 백무동 계곡을 찾는 사람들이 차량으로 넘나드는 곳이다.
주민들이 여원치 또는 연재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 지점이자 역사적으로는

삼한시대 이래 군사적 전략 요충지로서, 특히 남쪽에서 지리산을 넘어 곡창지대인 호남땅으로 향하

는 관문 역할을 한 곳으로 남원과 운봉, 함양을 연결하는 고개가 바로 여원재다.

 

비를 피할 곳이 없어 비닐하우스 건조장이 설치된 여원재 도로변 민가 옥상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고남산으로 향하면서 여원재의 슬픈 전설을 되뇌여 본다. 여원재 정상 암벽에는 여신상(女神像)이

있는데,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고려 우왕(愚王) 6년(1380)에 왜구를 정벌하기 위해 이성계 장군이 지휘하는 부대가 고개 정상에

이르렀을 무렵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여 시야를 가리더니 비몽사몽간에 노파(老婆) 한 분이 이성계

장군 앞에 나타나 왜구와 싸울 시기와 장소 방법을 일러 주었다고 한다.

 

그 노파는 당시 경남 함양지방의 미모 단정한 주부였는데 왜장 아지발도가 그녀를 희롱하며 젖가슴에

손을 대니 칼로 자기 젖가슴을 도려내고 자결한 원신(怨神)으로서 노파로 변신하여 이성계 장군에게

전략을 일러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여원재 여신상은 왼쪽 젖가슴이 없으며 그 노파가 지적하여

준 결전의 장(場)이 곧 운봉 황산(荒山)이었다고 한다. 황산에서의 대승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황산

대첩비가 지금도 인근 비전마을에 남아있으며, 이성계 장군은 정성을 다해 노파를 만났던 여원재

석벽에다 왼쪽 젖가슴이 잘린 여상(女像)을 새기고 그 위에 집을 지어 여상을 영구히 보존하고자

산신각(山神閣)을 지었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왜적이 함양을 유린하고 남원성을 향하는 도중 여원재 주막에서 술을 청하여 진탕

마시다 얌전한 주모를 위협하여 주모의 손목과 젖가슴을 만지며 방자한 행동을 하였다. 이런 수모를

당하고 난 주모는 비분하여 부엌칼로 자신의 젖가슴을 도려내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후 이런

주모에 대한 소문이 퍼져 이곳 주민들은 그 주모의 절개를 높이 기리기 위하여 그 자리에 비석을

세우고 그녀의 제각을 지었다고 한다.

당시 여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그 여인의 몸에서 물이 흘러 그 아래 마을 밭에서 자라는 풀이

쪽빛(藍)으로 변하였다고 하여 지금도 그곳 지명이 남평리(藍坪里)로 되어 있다고 한다. 

 

여원재에서 고남산으로 향하는 진입로는 논밭 사이의 길과 마을을 가로질러 가는 길로 이정표와

독도에 신경을 많이 써야한다. 마을을 지나 산길을 따라 오르자 신발속이 젖어온다.

바지 안쪽에 비닐주머니를 찰까 하다가 스패츠만를 믿었건만 어디가 잘못된건지 점점더 빗물이

스며들더니 고남산 정상무렵엔 아예 신발속이 철버덕 거린다.

 

계속되는 우중산행에 몸은 지쳐가고 1 km 정도의 심한 오르막을 힘들게 올라서자 비로소 고남산

정상(846.5m)이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주변의 조망은 보이지 않고 바로 아래에 있을 KT송신탑도

가늠이 되지 않는다.


고남산
의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주민들에 의하면 고남산태조봉 또는 제왕봉이라고도 부른다.

위치상 이곳은 옛날부터 전쟁의 요충지가 되곤 했는데, 고려 말인 1380년(우왕 6)에 인월면 인월리

본진을 둔 왜장 아지발도에 맞선 이성계가 천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이곳에 당도하여 제단을 쌓고

서쪽 기슭에 있는 창덕암 약수터에서 목욕재개하고 산신제를 올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상 부근에 헬기장과 중계소 시설, 시멘트 도로가 개설되어 자연경관을 훼손시키고

있다.

 

고남산 정상에서 통안재와 유치재를 지나 매요리 마을까지는 두시간 정도 걸리는 내리막 산길이지만,

바람 한 점 없는 좁은 산길의 오르내리는 잡목 지대로서 비 맞고 땀에 절은 몸으로는 여간 힘들지가

않다. 여느 때 같으면 가벼운 산책코스 쯤으로 생각될 야산같은 숲길을 힘들게 내려서자 매요리 마을

뒷쪽의 콘크리트 골목길과 만난다. 그제서야 빗줄기도 그친다.

 

매요리는 지세가 말의 형국을 닮았다 하여 원래 '말 마(馬)'자와 '허리 요(腰)'자를 합하여 마요리

(馬腰里)칭하게 된 마을인데, 그 후 임진왜란, 정유재란이 7년 만에 끝나자 고승 사명대사

산천을 두루 유람하다가 마요리에 당도하였을 때 매화의 꿋꿋한 정기가 감도는 것을 보고, 이 마을

사람들은 매화같이 선량할 것이니 지형과 인심에 맞게 매요리(梅要里)로 고치는 것이 합당하다 하여,

그 후 부터 매요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마을 인심은 넉넉치가 못한 것 같다.

매요리 마을회관 앞 작은 매점에서 후줄근해진 몸을 씻고 8구간 산행을 마친다.

 

 

▼내리는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기삼거리에서 8구간을 이어갑니다. 

 

▼고기삼거리에서 노치마을까지 약 2km 구간은 60번 지방도를 따라 갑니다.

  평지가 곧 산이 되는 산자분수령의 지형입니다.

 

▼노치마을 입구 마을표지석 좌우로 갈림길이 있지만 어느쪽으로 가더라도 마을에서 만나게 되는데

  좌측길을 택해 진행합니다.

 

▼노치마을앞에 나무 표지판이 있는데 이것은 지리산길 안내 이정표입니다.

  이 마을 앞으로 지리산길이 지나갑니다.

 

▼노치마을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마을 안쪽 백두대간 표지석 10 m 전방에서 우측 노치샘 방향으로

  대간길이 이어집니다.

 

▼노치마을 안쪽에 있는 백두대간 표지석입니다. 백두대간이 통과하는 유일의 마을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글쎄요..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마을은 많은 것 같습니다.

 

▼노치마을에 있는 노치샘입니다. 비가 와서인지 샘물은 그다지 깨끗해 보이지 않는데, 노치샘 우측

  길로 들어가면 당산나무 군락지를 지나 백두대간길이 이어집니다.

 

▼노치마을 뒷쪽 당산소나무 군락입니다.

 

▼노치샘에서 1.8 km를 올라 수정봉(804.7m) 정상입니다. 장맛비는 그칠줄 모르고 몸은 점점

  젖어갑니다. 

 

▼수정봉을 뒤로하고 입망치로 내려서기 전 마루금을 따라 걷습니다.

 

▼입망치 이정표

 

▼700봉에서 여원재로 떨어지는 도중엔 몇차례 임도를 만나는데 시그널 확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여원재로 가는 도중엔 이처럼 대간길이 물길이 되어버린 곳도 있습니다. 제법 비가 많이 오나

  봅니다. 

 

▼여원재가 가까워오면 이정표 없는 농로길을 따라 가야 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민박집 간판 뒷길로 내려서면 여원재입니다.

 

▼24번 국도상에 있는 여원재로 내려서는 길입니다. GPS 측정 거리는 수정봉에서 4.6 km 거리입니다.

 

▼여원재 길목엔 운성대장군이 지키고 있네요..

 

▼여원재 버스정류장에서의 모습입니다.

 

▼여원재 버스정류장에서 50 여m 지나오면 우측으로 고남산으로의 대간길이 이어집니다. 

 

▼여원재에서 고남산 진입구간은 논밭길과 마을을 지나가기 때문에 길 주의가 필요합니다.

 

▼비와 안개로 숲은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변해있지만 몸은 이미 후줄근하게 젖어있고 조금씩

  지쳐갑니다.

  

▼고남산으로 가는 도중의 밧줄 구간이지만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입니다.

 

▼정상을 조금 남겨둔 지점부터 가파른 오르막을 힘들게 올라 고남산 정상에 섭니다.

 

▼산불감시탑이 서있는 이곳이 고남산(846.5m) 정상입니다.

 

▼고남산 정상표지석은 정상 바로 아래에 이렇게 서있습니다. 

 

▼고남산 정상아래 KT중계탑이 있는 정문입구입니다. 정문입구 20 m 전방에서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백두대간은 이어집니다.(길주의)

 

▼KT중계탑을 내려서면 만나게 되는 도로입니다. 이곳이 통안재인데 전신주가 있는 곳으로

  진행합니다.

 

▼유치재를 지나면 야산같은 소나무 숲이 이어지고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구간입니다.

 

▼빗줄기가 가늘어지니 안개가 더욱 더 피어오르는데 고만고만한 야산길이 가도가도 끝이 없습니다.

 

▼드디어 야산구간을 내려서니 매요리 마을 뒷쪽의 골목길에 다다릅니다. 그러나 이곳도 엄연한

  백두대간 길입니다. 매요마을 안쪽에 있는 마을회관앞에서 8구간 우중산행을 마칩니다.

8구간 지형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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