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동용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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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이 말을 건다
바다를 품은 사찰 ‘해동용궁사’는 찾는 이에게 끊임없이 ‘무언의 말’을 건넨다. 절 입구부터 나올 때까지 곳곳의 나무푯말과 석상에 새겨진 글귀, 다양한 석탑과 불상으로 말을 건다. 주차장에서 1~2분여 걸어가면 오른편에 제일 먼저 보이는 석상에 인사말 대신 ‘한가지 소원은 꼭 이루는 해동용궁사’라고 적혀 있다. 바라는 모든 소원을 다 들어준다는 말보다 설득력이 있다. 왼편에는 12지상이 길게 늘어서 있다. 몇몇 상에는 삼재(三災)를 알리는 붉은 띠가 둘러져 있다. “내가 올해 삼재였나? 어쩐지…” 하며 두 손을 모으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모르면 몰라도 알고 지나치긴 힘들다.
용문 석굴로 들어가기 전 제일 먼저 보이는 탑은 ‘교통안전기원탑’이다. 세계 어느 사찰에 이런 탑이 있을까 싶다. 탑돌이를 하다보면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큰 사고를 면합니다, 운전하는 데는 조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부적입니다’라는 글귀를 볼 수 있다. 교통안전까지 기원해주는 절이니 다른 소원들은 말할 것도 없다. 108계단에 들어서 내려가다 보면 득남불과 학업성취불이 보인다. 만지면 아들을 낳게 해 준다는 득남불의 둥근 배는 아들 바라는 이들의 손을 타 까맣고 맨질맨질하게 윤이 난다. 어디 아들 바라는 사람들의 손길만 닿았을까. 108계단을 지나는 통과의례처럼 탐스럽게 불룩 올라온 포대화상의 배를 쓰다듬고 지나간다. 이름에 걸맞게 책을 보고 있는 학업성취불도 잠시 발길을 멈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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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뜰을 지나 계단을 몇걸음 올라가면 해수관음대불을 만날 수 있다. 꼭 한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바로 그 불상이다. 바다를 굽어 살피듯 용궁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터를 잡고 있다. 촛불을 켜고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들의 몸가짐이 조심스럽다. 꼭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니 더욱 간절해지는 것일까. 그 한가지를 꼽아보려는 세속의 마음과 고를 것도 없이 절박하게 빌어야 하는 애절함이 불상 앞에 선 이들의 표정에 드러난다. 희망을 품었든 절망을 품었든 불상 옆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시름을 거두어 간다.
‘참 좋은 곳에 오셨습니다’라는 대웅전 입구의 따뜻한 환영사가 절을 나오는 순간까지 마음에 남는다. ‘바다도 좋다하고 청산도 좋다거늘 바다와 청산이 한 곳에 뫼단 말가’라고 한 춘원 이광수의 감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몸아픈 이들이 병을 맡기고 간다는 약사여래불과 해가 제일 먼저 뜬다는 일출암, 해변산책길로 통하는 방생터, 바다를 바로 앞에 둔 4사자3층석탑도 놓치기에 아깝다.
#이곳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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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용궁사에서 700m 정도 내려가면 작은 절 ‘해광사’에 들를 수 있다. 깨끗하게 정돈된 절 내부도 멋지지만 해광사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광이 일품이다. 정면에서 왼편으로 대변항이 보이고 오른쪽에서는 용왕제를 드리는 곳으로 유명한 오랑대도 볼 수 있다.
대변항으로 가는 길 연화리에는 해녀들이 손수 잡아 차린 싱싱한 해물을 맛볼 수 있다. ‘손큰할매’ ‘최씨아줌마’ ‘어진이 엄마’ 등등 이름도 정겹다. 대변항은 기장에서 제일 큰 항으로 갈치와 멸치, 오징어가 유명하다. 말아 널린 미역과 갈치 등이 항구 옆에 길게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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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본격 피서철의 서막은 부산 해운대가 열어왔다. 7월 1일 해수욕장이 개장과 함께 해운대 백사장을 가득 채운 파라솔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국에 또 바캉스 시즌이 왔음을 알릴 것이다.
남해와 동해가 만나서 이루는 절경의 바다. 부산의 해운대에서 시작해 송정해수욕장을 지나 기장의 해안까지 내처 달렸다. 하와이 와이키키를 연상시키는 해운대가 귀티 나는 백사장이라면, 대변항 오랑대 등을 품은 기장의 바다는 소박하면서 아기자기한 멋이 있다.
해운대를 내려다 보는 달맞이 고개를 지나 처음 맞는 마을이 청사포. 이름이 곱다. 부산 유지들이 많이 찾는다는 고급 횟집과 젊은 연인들의 단골인 조개구이집들이 포진해 있다. 송정해수욕장은 해운대 같은 명성은 없지만 그에 버금가는 풍경을 지닌 곳. 최근 예쁘게 집을 지은 카페와 음식점들이 들어서고 있다.
송정에서 바다를 끼고 2km 가량 달리면 수상법당 해동용궁사다. 너른 바다를 절집 마당으로 삼은 사찰이다. 특별한 문화재는 없지만 절묘한 풍경으로 늘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이다. 해동용궁사측에서 말하는 사찰의 내력으로는 고려 공민왕때 나옹화상이 이곳에 보문사라는 절을 창건했다.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소실된 것을 1930년 통도사의 운강화상이 중창했고 1974년 정암스님이 해동용궁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사찰은 빼어난 풍경에 비해 조금 산만한 느낌이다. 절 초입에 늘어선 십이지신상이 처음 찾은 관광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삼재가 든 띠의 상 앞에는 불전함이 놓여있다. 삼재에 든 사람들이 그 화를 피하는 기원을 하며 성의를 표하라고 한 것. 불전함의 아이디어도 가지가지다.
절 문 앞의 5층 석탑은 교통안전기원탑이란다. 이곳에서 매년 안전운행대제와 교통사고로 죽은 이들의 왕생극락 발원제를 올린다고 한다. 절 문을 들어서면 배불뚝이 포대화상이 눈에 띈다. 득남불로 소문난 탓에 불룩 나온 배는 소원을 빌며 만진 이들의 손때로 새까맣다. 108개로 이뤄진 계단을 내려가 또 다른 테마부처인 학업성취불을 지나면 드디어 해동용궁사의 전경이 막힘 없이 열린다. 너른 바위 위에 올라앉은 절집은 바다와 너무 가까워 태풍이 일기라도 하면 성난 파도가 대웅전 지붕 위로 넘어갈 것만 같다.
해동용궁사에서 다시 해안도로를 타면 700m 앞에 또 다른 바닷가의 조그마한 사찰, 해광사가 있다. 바다로 튀어나온 오랑대 바위기암과 뒤편의 솔숲이 인상적이다.
해광사에서 바라보이는 항구가 봄이면 멸치로 유명한 대변항이다. 지금은 멸치철이 지났지만 포구의 길가 상점들은 멸치젓갈과 기장미역을 파느라 분주하다. 대변항 항구를 지나 언덕으로 올라서면 부산을 대표하는 영화 ‘친구’의 촬영지. 영화의 도입부 아이들이 물놀이 하던 장면 등을 찍었던 곳이다. 갯바위 위에 소박한 나무 벤치가 몇 개 놓여있어 조용히 한가로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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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엄쳐 나온 태양 ‘불심의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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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지나 달맞이고개 오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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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 해안도로
해운대 해수욕장을 지나 송정으로 가는 길목 오른편에 벚나무와 소나무 숲으로 감싸인 아담한 언덕길이 펼쳐져 있다.
달맞이 고개라고 불리는 이 고갯길은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의 와우산 능선을 열다섯 굽이를 돌아 넘는다고 해서 예로부터 15곡도라고 불렸다.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대한팔경의 하나이며 월출의 장관과 일몰의 경이로움을 아울러 감상할 수 있는 해월정이 나타난다. 정자에 올라서니 늙은 소나무가 우거진 숲 사이로 짙푸른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옛사람들이 이 고갯마루에 올라 수평선 너머에 떠오르는 달과 황금빛 바다와 소나무의 푸르름을 노래했다.
“창파에 명월이요. 청산엔 청풍이라. 청풍명월이 고루에 가득 차니 홍진에 막혔던 흉금이 활짝 열리더라. 바다도 좋다 하고 청산도 좋다거늘 바다와 청산이 한곳에 뫼단 말인가. 하물며 청풍명월이 있으니 선경인가 하노라. 누우면 산얼이요 앉으면 해월이라. 가만히 눈감으면 흉중에도 명월 있다. 오륙도 스쳐가는 배도 명월 싣고 가더라.” 춘원 이광수가 와우산 고갯마루에 올라 맑은 솔바람을 맞으며 떠오르는 대보름달을 보고 벅찬 희열을 못 이겨 노래한 시 ‘해운대’가 달맞이동산 비에 새겨져 있다.
달맞이 고개에서 청사포를 넘어 3킬로미터 남짓한 고갯길은 벚꽃 만발한 4월 보름 밤이면 달빛과 벚꽃 향기에 안달난 부산 사람들이 즐겨 찾는 나들잇길이다. 특히 달맞이 고개를 넘어 송림과 바다를 좌우로 끼고 짧게는 대변항까지, 멀게는 울산 밑의 진하 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동해의 멋과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해안도로 곳곳에는 해안사찰인 용궁사와 해광사를 비롯해 연화리 회촌, 대변항, 월전마을 포구, 월내포구, 문오성 회촌 등 크고 작은 어촌마을의 정취와 볼거리로 가득하다.
달맞이 고개를 지나 송정 해수욕장 입구에서 왼편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에서 국내에서 드물게 바닷가 언덕에 자리잡은 용궁사와 해광사를 만난다. 국내 3대 관음성지로 손꼽히는 용궁사는 곰솔(해송)이 우거진 해변가에 자리잡고 있어 ‘수당법당’이라 불렸다. 낭랑한 독경소리와 사철 들려오는 해조음이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새벽녘이면 동해의 푸른 파도를 헤치고 떠오르는 일출을 보려는 이들로 붐빈다. 또다른 해안사찰인 해광사 앞바다 기암절벽 위에 동해 용왕을 모신 용왕단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황홀할 만큼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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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광사를 벗어나면 기장미역과 기장멸치로 유명한 어촌마을 대변항과 마주친다. 멸치잡이가 한창인 봄과 가을에 만선의 배가 돌아오면 멸치장이 서는데, 멸치를 터는 광경도 장관이다. 대변항을 끼고 돌아도는 좁은 해안길에는 영화 〈친구〉의 첫 장면에서 아이들의 자맥질 시합을 촬영한 해안절벽과 만나면서 곧이어 월전마을 포구가 나온다. 기장읍 대변리에는 흙으로 만든 토우를 전시해놓은 토암도자기 공원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기암괴석이 첩첩이 서 있는 동해남부지역의 제일 명승지 동암리 오랑대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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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광해수욕장부터 동백, 신평, 칠암, 문중, 문동 등 5개 마을이 해안을 따라 회촌을 이루고 있는 문오성 회촌을 지나, 임랑해수욕장을 거쳐 고리까지 집어삼킬 듯한 동해의 검푸른 물결 사이로 본격적인 해안관광도로가 펼쳐진다. 특히 왕복 2차선 도로 주변에는 늙은 곰솔들이 길 안내를 해 호젓한 멋을 더한다.
기장/글·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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